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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주 화암사, -잘 늙어서 포근한 천년고찰
등록날짜 [ 2021년03월09일 10시58분 ]
 꽃따라, 전설따라 찾아간 소규모 여행지
 

▲어느 시인이 잘 늙은 절이라 읊은 대로 천년고찰 화암사는 사라진 단청만큼이나 위엄을 가진 채 불망산 산속에 자리잡고 있었다(사진=하성인기자)


[더코리아뉴스] 하성인 기자 = 어디 그 만큼 오래된 절이 없으랴마는 세월만 수수히 보내면서 오래되었다하여 그렇게 부르진 않았으리라 본다.

'잘 늙은 절이라고...' 어느 혜안(慧眼)이 밝은 시인이 저리도 딱부러지게 노래했을까 싶은 화암사.

바위 위에 핀 꽃이라고 풀이 할라치면 절 이름 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화암사를 오르는 산속 길가엔 맨 먼저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복수초를 비롯해서 엘레지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.
▲화암사를 오르는 산속길가에는 복수초를 비롯해서 각종 희귀 야생화 서식지로 유명하다보니 전국의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사진인들로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다(사진=하성인기자)

그리곤 또 며칠뒤에는 더 많은 야생화들이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내밀어 화암사라는 절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것같다는 생각과 함께 전라북도 완주의 화암사(花巖寺)를 올랐다.
▲이제 막 고개를 내민 복수초를 곁에 두고 오른 화암사 끝 자락, 돌계단 위에 모습을 드러낸 화암사 우화정(사진=하성인기자)

지난해 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영향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지다보니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이 여행업인데 지금까지 사스나 메르스가 그랫듯이 쉬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1년을 휠씬 넘긴 지금은 5인이상 집합금지라는 어쩌구니 없는 결과에 더하여 앞으로 일년은 족히 더 기다려야만 예전과 비슷한 일상을 되 찾을 수 있을것이라고 하니, 이에 전라북도 종합관광마켓팅센터(센터장 선윤숙)는 코로나블루로 지친 사람들이 소규모로 여행을 할수 있는 관광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한 팸투어를 실시,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 화암사를 찾았다.

천년 고찰을 안고 있는 불명산은 428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비가 내린 탓인지 화암사가는 길이 예사롭지가 않다. 하지만 몇년전에는 이보다 더 심한 산길을 걸어야만 오를 수 있는 곳이 였다고 하나, 더 이상 시멘트나 여타의 것들로 도로를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가파른 계곡을 따라 올랐다.
▲화암사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탓인지 여느 산사와는 달리 일주문 대신 외부의 침입이라도 막으려는 듯 유럽의 성벽처럼 우화정이 딱 버티고 있었다(사진=하성인기자)

거친 숨결이 다할 즈음 가파른 언덕길에 놓인 철제 계단을 잡고 운치있는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여느 절간에 있을 법한 일주문 비슷한 것은 없고 대신 곧장 절간(우화루)이 보이고 그 사이로 조그만 대문이 보인다.

우화루 앞 작은 계곡 앞에서 울려다보니 그야말로 늙은 절 하나가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듯한데, 오른쪽 마당에 매화가 봄비 속에 드문 드문 한 두송이 튀긴 강냉이처럼 메달려 있다.
▲봄비 속에서도 화암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우화정 앞에 막 피기 시작한 매화꽃 촬영에 몰두하고 있길래 기자도 덩달아 한컷(사진=하성인기자)

작은 대문을 따라 들어서니 '극락전'이 묵묵히 버티고 선 채, 우화정을 마주한 채 4각형의 맞배 구조가 반기고 있다. 그리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하앙식 구조를 한 처마와 여의주를 문 용(龍)은 단청이라곤 찾아 볼수없을 정도로 바랜 자연색을 입은 채 내려다 보고 있었다.

극락전을 천천히 둘러 보니, 공포(栱包)를 가리지 않고 한자 한자 띄어 쓴 '극', '락', '전', 현판이 새롭고, 앞 처마에는 용의 머리가, 뒷 처마에는 용의 꼬리가 조각되어 있는 모습도 생소하면서 재미있다. 여기 화엄사에만 그런걸까?
▲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하앙식 구조를 가진 목조건축물로 꿋꿋하게 버티고 선 극락전엔 세월 만큼이나 색을 잃어버린 단청으로 절간은 모노톤을 간직하고 있었다(사진=하성인기자)

중국과 일본의 건축물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하앙식 구조는 처마 밑에 또 하나의 처마를 덧붙여 지렛대 원리를 이용 일반 절간의 처마보다 휠씬 길게 해서 빗물이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줄수 있게 한 구조이다.

이는 모든 문화가 그러했듯이 일본의 문화가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를 거쳐 지나 갔음을 증명한다고나 해야 할까? 곧장 역사 날조에 혈안이 된 일본은 한때 일본의 문화가 한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얼토당토 학설을 내세웠지만, 화암사는 1425년쯤에 성달생(成達生)이 중창한 뒤 기념하여 쓴 '화암사중창비'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 걸로 보아 완주의 화암사 극락전은 일본의 그 어떤 절보다도 오래되었음을 증명하기도 하지며 우리나라엔 유일한 하앙식 구조를 한 목조 건축물로 귀중한 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.
▲앞 처마밑에 여의주를 문 용(龍) 머리가 뒷 처마까지 이어져 뒷쪽에서는 용의 꼬리를 볼 수 있다니.. 어디 이런 조각이 또 있었던가 싶게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 옛날 장인의 재치가 느껴진다(사진=하성인기자)

다만, 아쉬운 것은 1981년 해체.수리할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유재란 떄 피해를 입고 1605년에 중건되었된 정면 3칸, 측면 3칸의 맞배집 구조를 하고 있다.

봄비속에서 그려진 풍경이여서 그런지 잘 늙은 절 화암사의 극락전에서 바라보는 우화정, 마치 흑백사진 한장을 보는 듯이 무채색으로 그려진 창문 사이로 저 멀리 불망산의 초록잎들이 액자속의 그림들 처럼 칸칸이 와 닿는다.
▲극락전과 마주보고 있는 우화정 한켠에는 극락전과 함께 했을것같은 목어 한마리가 메달려 예불시간 임을 알려주고 있다(사진=하성인기자)

그리고 언제부터 걸려 있었을까 싶은 목어도 화암사와 같이 한탓인지 단청하나 없이 우화정 한켠에 메달려 예불시간이면 어김없이 울릴것같다.

모노톤에서 풍겨오는 천년 고찰의 무게감을 뒤로 한 채 내려오는 길-화암사는 그 옛날 용이 내려와 물을 주고 키운 꽃을 먹은 공주가 살아나 왕의 명으로 지었다는 전설을 입증이나 하듯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.

▲완주 화암사를 오르는 길 입구에 서 있는 화암사의 전설을 해설사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(사진=하성인기자)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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